성숙한 삶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과 농업기술의 발견 - 어떻게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되었는가? -

유해영 2020. 7. 17. 00:03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과 농업기술의 발견

 - 어떻게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되었는가? -

 

행복을 추구하는 모든 것을 공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공부하지 않고 격조 있는 행복을 얻는 것은 힘들다고 본다. 본인이 제시한 주제에 대하여 공부해서 이해를 높여가면, 여러분의 삶이 한층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되었을까? 인간이 한 지역에 거대 집단으로 거주하고 친밀한 유대감을 형성한 결과, 아주 다른 존재로 다시 만들어져, 만물의 영장의 자리에 올랐다는 이론이 있다. 유전적 진화 보다, 문화적 진화가 영향이 컸다는 얘기다.

     인간이 어떻게 세계 곳곳에 거대 집단으로 살 수 있을까?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따르면, 수렵민족은 그 집단이 200∼300명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유목민족의 무리는 20∼30만 명에 이르기도 한다고 한다. 약 10,000년 전에 작물 재배의 농업기술이 발견되고 발전되면서, 안정된 식량 공급으로,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한 지역에 거대 집단으로 머무르면서 살게 된 것이다. 농업기술의 발견으로 인간의 문명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된 것을 설명하는데 충분하지 않다.

     원시인들의 삶을 생각해 보자. 야생동물에 비해 보아도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원시인들은 하루하루 두려워하며 살았을 것이다. 또한, 화산, 지진, 해일, 번개, 이상한 기상현상, 전염병 등등, 지금이야 원인이 알려져 필요 이상의 두려움이 없지만, 원시인들은 항상 두려움에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인간은 현재에도 어떤 의지처가 없으면 살아가기가 어려운 존재이다. 원시인들은, 태양, 큰 나무, 달, 어떤 형상 등등, 여러 가지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살아갔을 것이다. 그들은 또한 어김없이 반복되고 엄중한 자연의 질서 자체에 대한 신앙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전지전능의 신’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다. 즉,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다. 바로 이것을 우리는, 하느님, 상제님, 천지신명, 한울님, 여호와, 알라 등등으로 지칭하는 ‘신’이다. 그 결과 인간이 아주 다른 존재로 또한 인간 사회가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발전되었다.

     인간의 생물학적 인지 능력의 한계는 150명이라고 한다. 침팬지는 120명이라고 한다. ‘유발 하라라’의 저서 ‘사피엔스’에 나오는 말인 듯한데, 본인은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이 말은, 인간은 150여명 정도의 사람과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서 동시에 많은 사람들 간에 유대감이 형성된 것이다. 그러한 유대감은 다시 그 사회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회가 되는 원인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교 성서에, 예수님께서 제자에게,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더 복되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서양 모두, 하느님이라는 믿음이 있다. 기본적으로 권선징악의 하느님이다. 이러한 권선징악의 하느님이라는 믿음만으로도 전혀 다른 인간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 시대에도 사람들이 여러 종교를 의지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절대 신을 부인하는 불교조차도, 아미타 부처님과 관세음 보살님을 염불 기도하는 것이다.「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절대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라는 말은, 하느님을 우리의 인식(6식: 안이비설신의)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여러 종교적 부작용이 발생한다. 몇 월 몇 일에 예수가 재림한다는 말도 안되는 황당한 일로 큰 소동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인간은 결국 나약한 존재다. 적절한 종교 생활을 권한다. 본인의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나, 부처님을 의지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원불교도 긍정적으로 보인다. 본인은 매우 과학적 합리성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과학도 인간의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인간의 인식 작용은 매우 제한적이므로, 과학 자체가 또 하나의 미신이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한없이 겸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공부하며, 일하며, 가족을 돌보며, 여러 규범을 지키며... 그럴 뿐, 그 이상 또 뭐가 있을까요? 다름 사람의 지식만으로는 많이 부족한 것이다. 항상 스스로 공부하면 좋을 것이다. 공부는 행복을 추구하는 모든 정신적 물리적 노력인 것이다.

 

이 주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으리라 본다. 유전학과 진화학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이해하기가 좀 더 쉬우리라 본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히 다시 한 번 요약 설명해 보겠다.

     원시시대의 인간은 소규모 집단으로 열매를 따먹고 물고기나 동물을 사냥해서 살았다고 추정된다. 남자 아이가 태여 나, 청년이 되면 아버지를 내치고 엄마를 비롯한 여자들을 모두 거느리고 살았을 것이다. 지금의 동물의 세계에서 흔히 보듯이 그런 동물적 집단을 이루고 살았을 것이다.

     농업기술이 발견되면서, 특히 작물재배 기술이 발견되고 발전되면서, 식량이 넉넉해지자,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고, 그 결과 인간이 한 곳에 대규모로 모여 살게 되었다. 대규모 집단 사회에서는 구성원 간에 갈등이 발생될 수밖에 없어 사회 질서의 문제가 대두 되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권선징악의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 발생하였다. 하느님의 출현이다.

     하느님의 출현으로 사회 질서가 유지되기 시작하였고, 하늘을 대신하는 사제나 왕이 출현하여 사회 질서를 유지 시켰다. 믿음의 대상이 같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 간에 강한 유대감을 형성시켰고, 그런 사회적 훈련의 결과 강한 집단으로 생물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현 시대에도 기본적으로 비슷하다. 천주교 신자들은 세계 어느 곳에 가나, 서로 바로 친밀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무슬림, 불자들도 비슷한 감정을 갖는 것이다. 같은 국적, 같은 종족, 같은 학교, 고향 등등, 서로 같은 부류에 속하면 쉽게 친밀한 유대감을 갖게 되고, 그러한 유대감은 사회생활에서 집단을 결속 시켜 강한 힘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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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찍은 손자 손녀 사진인데, 이제 커서 제법 무겁다. 아기들은 공갈 젖꼭지에 의지한다. 조금 더 크면,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어야 편하게 생각한다. 족보를 보고, 조상님들을 기억하고, 가족을 의지하고, 돌림자로 이름을 짓고, 학연, 지연을 따지고, 등등... 인간은 의지처가 필요한 존재이다.

                                  5월에 찍은 사진인데, 뭔가에 삐진것 같은데 잘 생각이 않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