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저술한 "영한 벼 생산기술" 책자 발간이, 연말연시 휴무, 구정 휴무, 본인의 해외 출장 등으로 지연되고 있으나, 현재 내용 교정은 끝난 상태이고, 편집작업 중이다. 3월 중순에는 발간이되어서 필요한 분들이 사서 볼 수 있으리라 본다. 본 책자에는 242장의 사진, 21장의 그림, 1장의 표가 첨부되어 있어 독자가 구체적이며 사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사진 242장 중에, 230장은 본인이 국내외에서 촬영한 것이고, 12장은 블로그에 올려있는 사진을 소장자로부터 얻은 것인데, 한장에 5, 6만원 정도 지급하였다. 그림은 작가에게 의뢰해서 새로 그린 것이다. 책자에 올린 사진외도 많은 관련 사진을 가지고 있다. 아마 2,000 여장 될 것으로 본다. 본인의 사진이 필요한 분에게는 요청이 있을 경우, 사용토록 할 것이다.
용수(나가르주나) 스님은 부처님 열반후 500년 경 분으로, 부처님 이후 생존했던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한다. 스님께서 체계를 세우신 중론은, 양 극단을 배제한다는 의미에서 중론이라고 한다고 한다. 공사상/반야심경에 대한 논리적 해설이라고 한다. 중론/중관학 사상은 신라시대 이후 1,000여년간 묻혀 있다가, 우리나라에서는 김성철 교수님의 박사학위 논문으로 연구된 이래 근년에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중론 사상을 살펴보면, 논리의 치밀함과 엄밀성에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 가 없다. 불교의 교리가 매우 정교하고 엄밀해서 감동적인 이론이 한두가지가 아닌데, 또한 그 한계 역시 적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다음은 본인의 불교교리에 대한 생각을 제시해 보겠다.
1. 불교의 사상들은 억겁의 무한대의 시간을 전제했을 때는 매우 정확한 이론으로 생각되나, 100여년 사는 인간이 왜 억겁의 시간을 전제해서 살아야 하는가? 이 것이 가장 큰 불교의 한계인 것 같다. 한 세상 좋은 일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이지 무슨 전생 내세 등에 얽매어 그렇게 사색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부처님께서 선정 중에, 전생을 보셨다는 것을, 불교학개론에서 읽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주관적인 체험 아닌가! 권선징악의 차원에서 윤회나, 천국/극락/낙원을 주장하는 것을 이해를 못하는 바는 아니다.
2. 불교의 기본 사상이 연기사상이다. 부처님의 위대한 깨닮음이다. 이 사상을 정확하게 이해 했을때 한층 성숙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본다. 세상만사 모든 것은 여러가지 인연(직접 및 간접원인)들이 얽히면서 서로 의존적으로 발생(dependent arising)하는 것이므로, 이 진리를 정확히 이해하게 되면, 모든 고통과 어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한다. 어려움의 원인을 소멸 시키면, 그 어려움도 없어지는 것이다. 또한 좋은 인연을 만들면, 좋은 결과가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의 건강관리도 정확히 이 법칙을 적용하면, 못 고칠 병이 없으리라 본다. 아토피?, 철저히 자연식을 해보라, 않 낫는 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3. 장단, 미추, 선악, 생사 등등은 기본적으로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삶의 편리성과 효율성을 위해서 그러한 개념들이 필요한 것이다. 개똥은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다.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나, 방에 있으면, 더러워서 치워야하고, 밭에 있으면, 유익해서 더 모아 들여야 좋은 것이다.
4. 중론에, "세상만사가 과거*미래*현재 그 어느 시간대에도 실재 할 수 없다. 이미 들린 소리는 지금 들리지 않고, 아직 들리지 않은 소리는 지금 들리지 않으며, 지금 들리는 소리는 있을 곳이 없다." 이 말은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않았으며, 현재는 있을 곳이 없다.라는 말인데, 그 사유의 치밀함과 엄격함에 희열을 느끼는 바이다. 그러나, 현재라는 개념(생각)은 내가 존재하는 당시를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상황에 적절하게 순간 에서 상당한 기간까지 설정해서 생활에 편리성을 추구하면 되는 것이지, 왜 있다 없다를 따지는가?
5. 제행무상이나 제법무아도 그렇다. 엄밀히는 태양도, 자동차도, 산도, 나도 그 무엇도, 실재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자성을 가지고 있는 불변의 실재가 없다는 말을 이해한다. 중론에서, " 세상만사는 그 모두가 실재하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체험되는 꿈이나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라고 말한다. 무한대의 시간을 전제했을 때는 정확하게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100여년 삶의 공간에는 태양도, 산천도, 나도, 자동자도 존재하는 것이다. 어떤 사상이 원론적으로는 맞는다 하더라도 실제 우리 삶과 괴리가 있으면 옳은 사상이라고 만은 하기 어렵다고 본다.
6. 인간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활발하게 번식활동(결혼해서 자손을 낳는 일)이 이루어지고, 그 가정을 양육하기 위해서 활발한 생산활동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불교의 교리는 이러한 활동을 기본적으로 억제한다. 어떤 사람이 초연한 삶을 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사상이, 인간 사회 발전에는 덜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불교의 사상이 워낙 위대한 면이 있어 인간을 성숙하게하는데, 즉 높은 경지로 나아 가는데는 유익한 것 같다.
7. 부처님께서, 연기를 깨닯은 후에, 일체개고(一切皆苦)임을 아시고, 그 원인을 여러가지 집착으로 보시고, 8정도의 수행을 통해, 그 집착을 멸하므로서, 열반적정에 들수 있다고 하였다. 열반적정이란,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난, 생사를 초월한 최고의 평온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깊은 경지는 참으로 위대한 면이 있다. 불교에서 흔히,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견해를 아주 자주 말한다. 본인의 생각에는, 오히려, "왜 있는그대로 보지 않는가?"라고 되 묻고 싶다. 무슨 근거로 윤회를 한다고 하는가? 면밀히 세상만사를 생각해 보면, 끊임없이 순환한다. 바로 이것을 열역학 제1법칙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한다. 물질의 순환을 윤회라고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윤회의 근거을 찾기가 어렵다. 부디 그러한 근거가 있느면, 본인에게 가르침을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한 열반적정에 든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인간사회를 위해서 무엇을 할수 있는가? 오직 자신의 초월된 행복을 즐길 뿐이 아닌가? 열반적정에 들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고 짝을 만나 아들딸 나아 잘 기르기를 권해 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인간 사회를 위해서 유익한 일이고, 더 큰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라 생각한다는 말이다. 불교의 이론이 인간을 한 차원 높은 경지로 이끌기는 하나, 많은 모순을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인간이 사는 100여년이 중요하단 말이다. 아무런 근거를 갖지 않은, 무슨, 전생, 내생을 논하는가? 무지할 수 밖에 없는 뭇 사람들을 혼란케 하는 것이 그 얼마나, 큰 죄업인가?
8. 과거, 자칭 생불이라고 하는, 칭하이 무상사의 책을 보면서 깜짝 놀랐었다. 그분의 지혜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분은, 절대 채식을 주장한다. 그 배경에 생명에대한 지극한 사랑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게 말이 되는 말인가? 생명원리에 반하지 않는가? 뭇 사람을 미혹케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업인가? 본인은 이와 같이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크게 존경하고 따르는,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 우주의 원리를 더 깊이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9. 이 시대의 큰 스승이라고 생각되는 법륜 스님의 책과 법문을 살펴보면, 많은 교훈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린 자식들과 젊은 아내를 위해, 즉,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남자들에게는 불생불멸, 해탈 열반... 참 사치스러운 말인 것 같다. 결국, 가족을 버리고 출가를 해야 한다는 말인데, 그게 말이 되는가? 이것이 바로 불교의 위험성과 한계인 것 같다. 사람의 약한 마음을 이용해서 교묘히 출가를 권하는 것을 적지 않게 보는데, 종교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필요도 하겠으나, 매우 조심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불교의 가르침이 매우 위대한 면이 있기는 하나, 불생불멸, 제행무상, 제법무아 등등에 현혹되지 말기를 권한다. 인간은 한 세상을 위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 살다가 쓰러지면, 일어나고, 또 쓰러지면, 또 일어나고, 계속 그렇게 사는 것이다. 억겁의 무한대의 시공간을 전제로 사는 것은 어리석음이라 생각된다. 법정 스님께서 지적하셨듯이, 일부 승려들은 사실 현 세상살이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피해온 사람들이다. 자랑할 것이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지극히 유아적이고 배타적인 광신적 일부 그리스도교를 좋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법륜스님은 이시대의 크신 스승님으로 생각한다. 그 분의 말씀에 거의 모순을 찾기가 어렵다. 그분의 즉문즉설을 많이 듣기를 권한다. 또한 그분이 운영하는 정토회에 가입 가르침을 청해도 좋으리라 본다.
10. 깨닮음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해서 사회에 이바지하고, 자식들을 잘 교육 지도해서 자식들을 사회의 한 분야를 담당시키고 식구를 잘 지도해서 무리없이 삶을 살게하고, 자신을 끊임없이 수양/수행해서 여러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게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되면, 세상이 보이고 자신을 알게되는 것이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끊임없이 극복하기를 위해 노력하면서 살면 되는 것이지, 좀 어렵다고 산 속으로 도망치듯 들어가 도대체 뭘 하겠다는 것인가? 일부 불교도 여러분들은 다시한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때로는 용기를 가지고 세상과 맞서고, 쓰러지면, 일어나고 또 쓰러지면 또 일어나고... 그러다 보면, 자신을 세상속에 세울 수 있는 것이다. 한 세상 씩씩하게 살면 되는 것이지 무슨 전생, 내생, 해탈, 열반 등등으로 그렇게 사색적으로 사는가?
중론 사상은, 매우 치밀하고 엄격히 이론을 제시한다. 그 사상에 모순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용수 스님께서 이 이론을 제시하고, 매우 위험할 수 있다라고 걱정했다고 한다. 간혹 파계승들이 있다고 하는데, 이 사상을 잘못이해하면, 그런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한다. 기본 지식이 충분하지 못하면, 본 책을 공부하기가 거의 어렵다. 그러나 이 사상은 매우 고차원적인 경지로 사람을 이끈다고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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