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백승(百戰百勝)" 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원래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白戰不殆)"라는 말이다. 손자병법 제3 모공편에 나오는 말이다. 영어 표현은, If you know the enemy and konw yourself, you need not fear the result of hundred battles. 직역을 하면, 당신이 적과 당신 스스로를 안다면, 백번 전투의 결과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이다.
13세기 몽골이 세계를 지배한 이후에는 현재까지 서양인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지배하는 정도를 넘어, 남북 아메리카, 호주, 뉴질랜드, 시베리아 등을 완전히 자기들의 나라로 만들어 버렸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를 알고 배워야, 우리도 좀 어깨펴고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주제로 이미 글 구상은 끝나 있으나, 아직 시간을 내지 못해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다함께 생각해 보자는 의미로 글을 시작해 본다. 시간이 허락되면, 조금씩 글을 써 올리겠다.
동서양의 차이가 우선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하여 차이가 크다. 목민심서(정약용)와 훈민정음 창제(세종대왕)에서 볼 수 있듯이, 백성은 동정과 지배의 대상이고, 관은 베풀고 지배하는 위치라는 것이 동양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정약용과 동시대 사람으로 영국의 스미스(국부론)와 맬서스(인구론)의 저서에서 볼 수 있듯이, 서양 사람들은 백성이 동정의 대상이 아닌, 스스로 해야할 일이 있는 인격체로 보았던 것이다. 또한 서양인들은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중시한다. 우리 동양인들은 함축적이고 대체로 과학적이지 못하다. 특히 한국인들이 원리적이라고 한다. 서양 사람들은 전통이 없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바로 받아 드린다는 말이다. 종교적인 차이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교와 불교인데, 그리스도교의 교리는 매우 신비롭고 비과학적이나 불교의 이론은 비교적 과학적이다. 그러나, 불교의 사상으로는 개인이 행복할 수는 있어도 사회가 발전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들을 풀어 설명해 보겠다.
1. 결과를 균등/평등하게 누리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균등하게 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국민이 잘살고 못사는 것은 정부가 모두 책임저야 하는 일이 아니고 이 문제는 개인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보는 것이다. 정부는 개별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개인에게 맡기고 개별적으로 할 수 없는 일, 즉, 국방, 외교, 사회기반시설 등을 책임지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 발전은 어차피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자율 조정 발전하는 것이고, 인위적으로 조정되기 어려운 것이다.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대하여,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듯 하다. 정부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개인의 일은 우선 개인의 책임인 것이다. 어떻게 정부가 개개인의 모든 것에 책임을 질 수 있는가? 공산주의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의 생각의 출발이 매우 인간애적(人間愛的)일 지라도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어보면, 구구절절이 백성에 대한 지극한 애정으로 일관되어 있다. 정부의 그러한 입장은 결국 사회 발전을 늦추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흑백논리를 경계해야 한다. 양단(兩端)으로 명확히 구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계속됨...
아래 글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2009년 동유럽에서 기술지도할 때 찍은 사진이다. 어린이들은 6살 정도이고 남자는 24살이라고 하며, 85cm 정도 키가 크고 잘 생긴 사람이다. 본인의 얼굴이 넓적한 사람이 아닌데도 본인의 얼굴이 넓적하게 보인다. 어린이는 10살만 되면 벌써 얼굴에 주름이 생긴다. 양을 치는 청년이 어찌나 외로워하는지,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주 고맙게 생각한다.
바로 동양인종과 서양인종의 얼굴 특색이 잘 나타나고 잇다.
본인이 지내는 호텔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이다.
야만 종족이 세계를 완전 정복한 이야기 / 수량화 혁명 (The measure of reality)
10세기, 그러니까 서기 900년경 까지만 해도 중동 무슬림 세계에서 환관이나 남녀 노비로 생활하며 천대 받던, 서 유럽인들이 600년 후에는 세계 문명 수준과 비슷한 정도로 발달하였고, 그 후 350년이 지나서는 세계를 완전히 정복하였다. 어떻게 이 시골뜨기들이 이런 일을 해낼 수가 있었을까? 전통적 질적인 사고에서 양적인 사고로 의식을 변화시킨 결과하고 한다. 1250년에서 1550년 사이에 유럽인들의 사고방식에 큰 전환이 일어났다고 한다.
현재 이 세계는 유럽인들이 거의 완전히 정복한 생태이다. 유라시아 대륙은 물론 남북 아메리카, 호주, 네덜란드, 대양의 많은 섬들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문화가 유럽인들의 문화로 대체되었거나, 대체중이다. 그것도 최종적으로 다시 돌이킬 수 없게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나?
역사상 위대한 정복 군주로, 칭기즈칸이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드는데, 대영제국의 전성기인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Victoria, 1819-1901) 비하면 그런 정복 군주들은 골목대장 수준이라고 한다. 당시 영국은 세계의 4분의 1을 차지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 합병되던 당시, 영국은 세계의 패권국이었다는 말이다.
양적 사고로 전환되었다는 말은, 모든 인식을 시각적이고 수량화를 했다는 말이다. 그 결과 자연법칙을 더 잘 발견하였고 따라서 과학이 급격히 발전될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금속활자를 먼저 발견해지만, 글자를 서예(書藝)라고 하여 예로서 발전시켰고, 더 나가, 서도(書道)라고 하여 도로서 발전시켰다. 질적인 발전을 추구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금속활자로 흥미로운 소설을 찍어내어 대중화시켰고, 성경을 대량 찍어내어 지식을 확산시켰던 것이다.
유불선이라고 하는 동양사상이 모두, 주관적인 질적인 것이다. 이런 사상은 개인의 주관적 행복은 만족시켜 줄 수 있지만, 사회가 발전하는 데는 많이 부족한 것이다. 승려들이 말하는 ‘무소유’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가? 산속에 처박혀 하루에 한 끼 먹고 명상이나 하는 승려들에게나 맞는 말이다. 유교의 지나친 형식주의, 도교의 지나친 자연주의 사상은 사회가 발전하는데, 매우 적절치 못한 사상이라고 본다. 그래서 서양인들에게 완전히 정복당한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차려보자. 함축적이고 어설푼 정신적 가치 따위로 세상을 놓치지 말고, 구체적이며, 사실적이고 실질적으로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 유교, 불교, 도교 등, 동양철학, 의미가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나, 허세부리고 폼잡지 말라는 말이다. 어떤 동양 철학자가 폼잡고 말하는 것을 본인도 한때 좋아했는데, 이제 좋아하지 않으려 한다. '나물먹고 물 마시고 팔 베고 누었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도다.' 이런 무지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못난이들이 하는 말이다. 도인은 무슨 도인, 있는 그대로가 그냥 진리이거늘 뭘 더 알려고 허송세월 하는가. 그냥 열심히 일하며 살면 그게 바로 사람이 살아야할 길이거늘...
아래 책에서 그러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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