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업 발전 과정과 철원농업 발전 방안
유해영 박사
우리나라 농업기술은 1960년대 이전에 비해서 현재의 수준은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되었다.」 라고 할 만큼 발전되어 있다. ‘60년대 이전에는 ‘진지 드셨어요?’라는 인사말이 오갔고, 절대 식량이 부족해 외국으로부터 밀가루와 우유가루 등을 원조받아 겨우 굶주림을 해결하였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가 시작되면서 강력한 농업발전정책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1975년도에는 쌀 자급이 이루어졌다. 당시 식량자급을 지속시키고 농작업 기계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농촌지도직 공무원이 채용되었다. 그러한 정책으로 1990년대까지 식량자급의 토대가 완성되었고 농작업의 기계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큰 국가적 농업정책 목표가 완료됨에 따라, 농촌지도직 공무원의 조정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따라서 1997년 상당수의 농촌지도직 공무원을 농업연구직 공무원으로 전직시키고, 나머지 인원을 국가직에서 지방직으로 전환시켰다. 「농촌지도소」라는 조직 명칭도 「농업기술센터」라는 명칭으로 전환 지방정부 조직에 편입시켰다. 미맥(米麥) 위주의 단순 농업에서 다양한 작목의 기술농업으로 전환된 것이다.
철원은 벼가 주로 재배되고 있으나, 토마토, 파프리카, 오이, 불루베리, 사과, 포도, 버섯, 돼지, 소, 닭 등 다양한 작목과 가축이 재배 사육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다양한 분야를 지도할만한 분야별 전문가가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를 육성 확보하는 것이 철원의 농업발전을 위해서 시급한 과제이다,
전문가를 육성하는 방법이 있다. 철원군농업기술센터에 근무하는 현 농촌지도직 공무원을 전원 농업연구직 공무원으로 전직시키고 중앙연구기관이나 강원도농업기술원 연구소에서 연수를 통해 전문가로 육성하면 되리라 본다. 철원군농업기술센터에 근무하는 지도직 공무원들의 역량은 충분하다고 본다. 선진연구기관의 연수를 받으면 빠른 기간 내에 전문가로 육성되리라 본다.
1. 전통농업 시대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경운, 정지, 파종, 이앙, 제초, 병해충방제, 수확, 탈곡과 같은 여러 농작업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농작업들이 전통적으로 축력 쟁기와 써레, 호미, 괭이, 삽, 낫, 족답탈곡기 등에 의해 실행되었다.
이러한 전통 방법은 힘이 많이 들고,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농번기에 모내기 지원, 벼베기 지원과 같이 많은 국민이 동원되어야 했다. 1960년대부터 동력경운기가 도입되기 시작했으나 1970년대까지는 대부분 전통농업 방법으로 농사를 지었다.
2. 녹색혁명과 식량자급 달성
제3공화국이 1963년 시작되면서 혁신적인 농업발전정책이 시작되었다. 당시 국가의 3대 시정목표가 증산, 수출, 건설이었다. 제1의 목표가 쌀 증산이었던 것이다. 쌀 자급을 위해서 다수확 벼 품종 개발을 위한 교배가 1965년에 필리핀 소재 국제벼연구소에서 우리나라 과학자에 의해 시작되었고, 1970년 통일벼 품종이 육성되었다. 그 결과 1975년에 쌀 자급이 실현되었다. 이를 녹색혁명이라 한다.
추위에 약한 통일벼 육묘를 위해 비닐보온절충못자리가 개발되었다. 1980년 이후에는 국민소득 증대로 소비자의 식품 고급화 요구도가 높아졌다.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미질이 좋은 다수확 일반벼 품종을 육성 식량자급을 유지 시켰다.
통일벼 재배로 농업용 비닐 생산이 필요해 졌고, 1970년 울산석유화학단지가 조성되고 농업용 비닐이 본격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농업용 비닐 생산은 원예작물의 비닐하우스 재배를 촉진시켜 원예작물의 주년생산(周年生産)을 가능하게 하여 국민이 사계절 신선한 채소류를 먹게 되었다. 이를 백색혁명이라 한다.
3. 농작업의 기계화 달성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경운, 정지, 파종, 이앙, 제초, 병해충 방제, 수확, 탈곡과 같은 여러 농작업을 해야 한다. 전통적으로는 축력이나 사람의 힘으로 하는데, 매우 힘이 들고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일이다.
벼 기계이앙 재배기술이 1977년 농촌진흥청에 의해 전국적으로 시행되었고 1988년 절반 이상의 논이 기계로 이앙되었다. 동력경운기와 트랙터도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도입 사용되었고, 벼베기와 탈곡작업이 동시에 되는 콤바인도 1990년대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2000년 벼농사 기계화율이 87.4%, 2018년에는 98.4%로 거의 기계화 되었다. 벼농사뿐만이 아니라 다른 작물 재배도 대부분 기계화되어있다. 경운, 파종, 제초, 방제, 수확, 탈곡 등을 대부분 기계로 하고 있다.
농작업의 기계화 달성은 농민을 중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잉여 노동력이 타 산업으로 이전되어 우리나라 산업화에 크게 기여, 한강의 기적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4. 농촌지도직 공무원 전직과 지방직 전환
국민의 식량자급과 농작업의 기계화를 달성하기 위하여 ‘70년대에서 ’80년대에 걸쳐 많은 농촌지도직 공무원을 채용하였다. 그 결과 식량자급은 1970년대에, 농작업의 기계화는 1990년에 달성되었다.
따라서 국가적 차원의 대규모 농촌지도 인력이 불필요하게 되어, 1997년 상당수의 지도직 공무원을 연구직 공무원으로 전직시키고, 나머지 지도인력을 국가직에서 지방직으로 전환 배치하였다. 기관명칭도 「농촌지도소」에서 「농업기술센터」로 변경 지방정부 조직에 편입시켰다. 미맥(米麥) 위주의 단순 농업에서 다양한 작목의 기술농업으로 전환된 것이다.
5. 작목의 다양성과 첨단 농업기술의 발전
식량자급과 안정적 생산이 시급했던, 1980년대 이전의 농업은 여름철에는 논에 벼를 재배하고 겨울철에는 보리를 재배하는 미맥 중심의 단순 농업이었다.
1980년대 이후, 식량자급이 유지되고 국민소득 증대로 소비자의 식품 고급화와 다양화 요구도가 높아졌다. 농업용 비닐이 본격적으로 생산 공급됨에 따라, 비닐하우스에서 원예작물의 사계절 재배 생산이 시작되었고, 다양한 작목이 재배되기 시작하였다.
2000년대 이후에는 농업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등 첨단기술 융합으로 스마트팜 관련 재배기술과 식품가공기술, 포장 유통기술 등이 발전하여 기술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기술농업 시대가 되었다.
6. 철원농업 발전 방안
철원에는 벼농사가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벼농사 외에도 과채류와 과수 그리고 여러 종류의 가축이 재배 사육되고 있다. 많이 재배되고 있는 작물은 벼 이외에도 파프리카, 오이, 토마토, 사과, 포도, 불루베리, 버섯 등이며, 주요 가축으로는 돼지, 한우, 젓소, 육계, 흑염소 등이 사육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작물 재배와 여러 가축 사육과 관련 기술지도를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분야별 전문가가 철원에 있는가? 이러한 전문가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철원군농업기술센터에서 현재 근무하는 농촌지도직 공무원들은 많은 경험이 축적되어 있어 상당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이분들을 농업연구직으로 전직시키고, 중앙연구기관이나, 강원도농업기술원 연구소 등에 연수를 보내 기술을 전수받으면 되리라 본다. 이미 많은 경험이 축적되어 있으므로 단기간에 상당한 수준의 분야별 전문가가 되리라 본다.
우리나라 현재의 농업은 매우 다양한 작물이 다양한 방법으로 재배되는데, 작물별로 상당한 기술 없이는 성공적으로 생산 활동을 하기가 어렵다. 가축 사육도 전문적인 기술 없이는 성공하기가 어렵다. 농업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문가 확보가 필수적인데, 철원에 분야별 전문가가 확보되었는가 검토해 보기 바란다. 분야별 전문가가 확보되지 않았다면 철원군농업기술센터 현 농촌지도직 공무원들을 농업연구직으로 전직시켜 전문 연구기관에서의 연수 과정을 통해, 빠른 기간 내에 전문가로 육성하면 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