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업기술

우리나라 벼 재배기술의 새 장을 여신 분, 이종훈 선생님 / 배 고품에서의 해방

유해영 2019. 9. 6. 08:12

우리나라 벼 재배기술의 새 장을 여신 분, 이종훈 선생님

 

본인은 농업인들과의 대회 중에 한국 벼 재배기술의 발전을 가리켜, 천지개벽이라는 표현을 여러 번 사용한 적이 있다. 1970년대 이전과 현재의 벼 재배기술 수준을 비교해 보면, 천지가 개벽한 만큼 발전했다는 수사적인 표현을 한 것인데, 특히 벼 기계이앙 기술을 단기간에 정착시켜 놓은 것은 놀랄만한 일로, 이는 우리나라 국민을 배 고품에서 벗어나게 한 중요한 사건중 하나인 것이다. 이와 관련 여러 가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일들이 있다.

     무엇이 그리 천지가 개벽한 만큼 변했다는 얘긴가? 아마 60대 이상 되시는 농업인들은 70년대 이전의 벼 재배기술을 기억할 것이다. 물못자리에 볍씨를 뿌려 모를 기르고, 소로 논을 갈고 써레질을 하여 논을 평평하게 만든 후, 모를 손으로 쪄서, 손으로 논에 심었다. 가을에 벼는 낫으로 베어 논바닥에 깔아 펴서 햇빛에 말린 후, 족답탈곡기라고 하는 기계로 발로 밟아 낱알을 턴 다음, 멍석을 깔고 햇빛에 말려 방아를 찧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옛 이야기 같이 들린다. 그 중에서도 모를 논에 손으로 심는 과정이 참 힘든 일이었다.

     벼 기계이앙기술은 1970년대에 연구가 시작되어 1990년대에 완전히 성공 정착하여 그 이후로는 벼 재배기술의 기준이 되어 벼렸다. 이렇게 단기간에 천년 이상의 관행 농업기술이 새로운 혁신적인 기술로 대체되어 국가적 숙원인 배 고품에서 해방되는 역사적 계기가 된 것이다.

     이런 엄청난 일이 단 기간에 가능했던 것은, 우리나라를 배 고품에서 해방시키고 잘 살아보자는 강력한 국가지도자(박정희 대통령)의 의지가 있었고, 그 의지를 받들어, 김인환 농촌진흥청장(1968-80), 윤근환 청장(1980-82), 김문헌 청장(1982-88)의 강력한 정책적 추진이 있었던 것이다. 이종훈 선생님(방송통신대학교 명예교수)은 바로 이 시기에 기술적 책임자로서 작물시험장 수도재배과장을 역임 하시면서 벼 기계이앙기술의 시작과 완성을 시키신 분이다.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고 윤용대 전 연구관(당시 연구사)과 양원하 박사(당시 연구사) 등이 관련 시험 사업을 추진하면서 전국적으로 농촌지도사들을 교육 시켰다고 한다. 본인은 1977년 농촌진흥사업에 참여하여, 이러한 연구지도 과정에 부분적으로 참여한 바 있다.

     역사는 문자화되지 않으면, 잊히는 것이고, 문자화 되어 있더라도 요약되어 여러 사람들에게 소개되지 않으면 묻히게 되어 잊히게 되기 쉽다. 우리국민을 배 고품에서 해방시키는데 공헌한 이런 특별한 역사적 사실을 요약 정리, 알릴 필요성을 느껴고 있다.

     본인이 만든영한 벼생산기술」 책자를 개정 증보 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 책자에 이러한 사실을 기술하려고 한다. 관련 분들은 구체적 내용을 본인(r49@hanmail.net)에게 알려 주기를 부탁드린다. 올해도 풍요로운 추석을 맞이하였다. 이러한 풍요로움을 있게 한 여러 관련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함께 기뻐하는 바이다.

철원 평야, 햅쌀이 생산 판매되고 있다. 동송농협(033 455 4969)과 철원농협(033 455 0253)에서 판매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