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삶

우리나라 그리스도교의 전파, 성과, 그리고 영향 / 광주 치평동성당 미사 참석

유해영 2015. 7. 5. 04:49

7월 4-5일, 광주 유니버시아드 구경 왔다가 치평동성당에서 특전미사를 드렸다. 신부님의 강론중에 김대건 신부님에대한 말씀이 있었다. 우리나라 선각자 김대건 신부님을 이끌어주신 분들이 당시 우리나라에서 선교사로 활동을 하시던 프랑스 신부님들이다. 우리나라가 서양의 두 나라에게 큰 빚을 졌는데, 바로 1800년대 우리나라 사회가 공황상태(멘붕)에 빠졌을때,  여러 프랑스 신부님들이 목숨을 바쳐 순교하면서 그리스도교 씨앗을 이땅에 뿌리셨다. 당시 우리사회가 양반과 상민, 남자와 여자의 계층간 소통이 단절되어있어서, 당시 그리스도교의 진리는 그 자체가 희망이고, 큰 광명과도 같은 대단한 것이 였다고 한다. 1900년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선교사들이 장로교와 감리교를 전파하여 개신교가 크게 성장하였다. 세계 대형교회 15개가 모두 우리나라에 있다고 하니, 그 발전은 이상하리만치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프랑스와 미국에게 우리는 큰 빚을 지고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9세기와 20세기 전반, 즉 조선 말기에, 우리나라의 성리학이 한계에 다다르고, 열강의 쟁탈전이 벌어지면서, 우리나라 사회가 공황상태에 처했었습니다. 이때, 한 줄기의 서광이 비추니, 바로 그것이, 그리스도교(천주교와 개신교) 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스스로 받아 들였지요. 아마도 종교사적으로, 가장 큰 성과를 낸 것이 우리나라라고 생각이 드네요. 우리나라의 현대 사상, 과학, 교육, 의학, 문화 등 거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교를 통해 들어왔고, 기적과 같은 열매를 이미 맺었습니다. 본인이 어렸을때, 그러니까, 1960-70년대, 교회에서 가르치는 오락이 사오년 지나야 라디오나 텔레비죤에서 그제야 나왔습니다. 생생하게 기억하네요. 그리스도교를 통해서, 공산화도 막았고, 산업화도 이루었고, 민주화도 일궜습니다. 산업화하는데 그리스도교의 공헌에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보다 전문적 시각으로 볼때 공헌이 커 보입니다. 문제는 그리스도교의 앞으로의 역할에대해 걱정이 다소 됩니다. 특히 개신교의 역할이 지금 현실에서 무엇인지 의문이 갑니다. 이제까지는 엄청난 역할을 했는데요. 빨리 그 방향을 세우고 개혁을 해야겠지요. 시대정신이 무엇이냐 그런말 이에요.

이런 엄청난 그리스도교의 성과가 우리민족에게 종교적 자각도 하게 한것 같네요. 강증산이라는 대각자가 나와 보천교/증산도라는 종교가 시작되어 지금도 여전히 상당한 세력을 확대하고 있지요. 교리적으로 현실도피라는 부정적 측면이 있서 천시받던 불교도 많은 영향을 받아 상당히 좋아진것 같으며, 특히 원불교라는 상당히 진전된 불교의 다른 메세지가 우리사회에 던져졌습니다. 이런 것들이 그리스도교의 도입 발전과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종교문화 충격이라는 현상과 관련이 있어 보인단 말입니다.

여러 종교가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합니다. 이것은 유교의 영향이 큰것 같네요. 보편타당한 유교의 가르침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여하튼 우리나라만세 입니다.

그리스도교(천주교 및 개신교)에 대한 비판이 많은 것을 안다. 예수님의 신격문제, 동정녀 탄생문제, 예수님의 부활 승천문제, 등 이성적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우리의 인식은 6가지(안이비설신의) 인식의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가 사유하는 모든 것은 방편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이 아는 것은 사실 자체의 지극히 일부분을 아는 것일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사유는 가설일 뿐이다. 우주의 본질을 신으로 보고, 신의 뜻(우주의 질서 자체)을 따르는 것이 사람이 구원받는(행복하게 사는) 길이라고 볼때, 불교적으로 말하면, 우주의 본질을 깨닮음으로서 행복(구원, 열반적정)에 이를수 있다고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적으로 볼때, 인간을 구원(행복)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방편을 체계화해서 우매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을 이끄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으리라 본다. 어차피 모든 것은 방편(가설)인 것이다. 방편이라는 말은 6가지 인식 내에서 사유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성을 전제로, 또한 어쩌면, 아주 우매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행복을 위한 임시적 가설이라는 말이다. 이런것을 이해하면,  여러가지 이론을 수용할 수 있으리라 보는데, 이런 말 조차 쉬운말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의문이된다. 어차피, 이 세상은 아주 어린 수준의 사람부터 고차원의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이 있어, 무속신앙 조차도 필요한 것이다.

 

모텔에서 잠이 일찍깨어 글을 올리고있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가격이 좀 비싸네요. 지혜와 지식을 서로 나눠 더 좋은 세상 만듭시다. 단지 그럴뿐.

 

2016년 12월호 월간중앙에 실린 종교와 관련된 내용이다. 조선 말기에, 서학(천주교와 개신교)이 전파되면서, 그 반작용으로, 유불선+무교의 개념으로, 동학과 천도교가 생겨났고, 그 동학/천도교가 다시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합쳐저, 통일교가 생겨났고, 또한 그 동학/천도교가 다시 유교의 교리와 합쳐저 갱정유도라고하여 새로운 유교(청학동)가 만들어 졌고, 또한 그 동학/천도교가 불교의 교리의 영향으로 원불교가 생겨났고, 또한 그 동학/천도교가 무교의 영향으로 증산도(증산계열)가 생겨났다고 한다.

 

아래 사진은 신부님의 허락을 얻고 찍은 것이다.

신자들이 헌금을 하고있다. 본인의 의사에따라 내는 것임으로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성체를 모시고있다.

 

신부님이 어린이 복사와 함께 미사를 집전하기위해 가시고있다. 본인도 복사를 한적이 있다.

 

 

원불교당. 원을 상징으로 나타내는데,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것 같다. 우선 불교의 인연법을 형상화한 것 같고 따라서 모두는 하나다라는 의미를 표현한것 같다. 원불교는 불상을 내려놓아, 소위 우상숭배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났고, 불교를 대중속으로 끌어내려 여러가지 개혁을 한것 같다. 서양에서는 종교와는 거의 무관하게 원불교당을 마음공부하는 도량으로서, 사람들이 와서 수행을 한다고 한다. 어느정도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