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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지역의 자연환경 여건 / 강원북부신문 24.8.29

유해영 2024. 8. 30. 14:45

강북신문

 

 

철원 지역의 자연환경 여건

유해영 박사

 

  어떤 지역의 자연환경 여건은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특히 농업 생산을 주로 하는 철원과 같은 지역에서는 농업 생산이 자연환경 여건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한반도의 중앙 내륙에 위치한 철원의 자연환경 여건을 살펴보자.

 

1. 여름철 일장(日長)

  여름철 작물 생육기간 중에 햇빛이 비치는 시간을 나타내는 일장(낮의 길이, 일출∼일몰)은 위도(緯度)와 비례하여 길어진다. 일출(日出) 일몰(日沒) 시각은 태양의 가장 윗부분이 지평선상에 나타나고 사라지는 시각을 말한다.

  열대 저위도 적도 지역에서는 일장이 연중 일정하여 약 12시간이다. 우리나라 쌀과 경쟁이 될 수 있는 중국 흑룡강성 삼강평원(三江平原, 북위 47.5도, 동경 132도)의 6월 21일 하지경 일장은 15시간 54분이다. 적도 지역보다 약 4시간 정도 길다.

  철원 지역은 우리나라 벼 재배지역 중에 위도가 가장 높은 평야로서, 6월 21일경 하지를 기준으로 낮의 길이가 14시간 49분 33초로 우리나라 평야 중에서 일장이 가장 긴 지역이다. 제주도 서귀포에 비해 28분 22초 길고 전남 남쪽 완도 지역에 비해서는 22분 42초 길다. 철원보다 위도가 높은 지역인 화천, 양구, 인제 등은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산이 햇빛을 가려 일장이 길지 않다.

  식물은 잎의 엽록소에서 햇빛을 이용 이산화탄소와 물로 탄수화물과 산소를 만들어 낸다. 이런 작용을 광합성이라고 한다. 즉 햇빛 비추는 시간이 길면 그만큼 더 많은 탄수화물과 산소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또한, 5, 6월의 햇빛은 논바닥의 온도를 급격히 상승시켜 벼 뿌리의 발달과 가지치기를 촉진시킨다.

 

2. 기온의 일교차

  기온은 계절에 따라 변해서 기온의 연교차가 생기고, 밤낮에 따라 변해 기온의 일교차가 생긴다. 일반적으로 연교차가 일교차보다 크다. 일교차는 하루의 최고기온과 최저기온의 차이를 말한다. 최고기온은 낮에, 최저기온은 밤에 온다.

  벼 식물체는 광합성을 통하여 유기물과 산소를 생성한다. 또한 광합성으로부터 생성된 유기물을 체외로부터 산소를 흡수 산화하여 에너지를 유리(遊離), 식물체의 생육과 기초대사에 사용한다. 이것을 호흡이라고 한다. 그런데 밤에 온도가 낮을 경우 호흡이 억제되어 낮에 광합성으로 생성한 양분의 소모가 적게 된다. 특히 등숙기간 중 밤의 온도가 낮아 밤낮의 온도차 즉 기온의 일교차가 크면 벼 등숙이 좋아진다.

  기온의 일교차는 해안지역 보다는 내륙지역에서 크게 나타나고, 고위도(高緯度)지역에서 저위도지역으로 내려갈수록 일교차가 작다. 연평균 대기 온도는 위도가 1도 높아짐에 따라 약 0.4℃씩 낮아진다. 또한 기온의 수직 분포는 해발고도가 낮은 지역에 비해 높은 지역은 기온이 더 낮다. 그리고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일교차가 더욱 크다. 고도가 100m 높아짐에 따라 기온은 평균 0.65℃씩 낮아진다.

  철원평야는 다른 지역에 비해, 위도가 높은 내륙에 위치해 있고, 해발고도가 150m∼250m로 벼 등숙에 유리한 여러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철원평야가 우리나라에서 벼 등숙에 매우 유리한 재배환경을 가지고 있다.

 

3. 철원평야의 논토양 특성

  토양 조건은 작물생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토양의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종합 조건은 작물의 생산력을 지배함으로, 이를 지력(地力)이라고 한다.

  벼의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작토층(作土層)의 물리적 구조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모래 성분이 많은 사질답은 양분의 보유력이 낮고 투수율이 높아 벼 생육에 좋지 않다. 그러나 토양의 점토(粘土)는 물과 양분을 흡착 보유하는 힘이 커서 비료의 과잉 흡수를 억제하고 비효를 늦게까지 지속시킨다. 또한 점토에는 철, 마그네슘, 인 등 유효한 광물질(minerals)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식물체를 건강하게 키운다.

  이러한 미네랄은 사람에게도 좋아 진흙(mud)을 사람 피부에 바르기도 하고 머드 팩(mud pack)이라는 화장품으로 개발 이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령머드축제」가 바로 진흙을 활용한 축제로서 유명하다. 철원에 있는 양질의 황토 찰흙에 대한 활용을 검토해 볼 수 있으리라 본다.

  「한국의 답토양(농촌진흥청 1984)」에 따르면 철원평야 동송통 논토양의 점토 함량은 38.2%, 철원통은 37.3%로 우리나라 논토양 중 제주 이호통과 함께 가장 높다. 우리나라 벼 주요 재배지역 논토양의 점토 함량은, 경기 이천통 26.5%, 전북 김제통 36.0%, 평택통 21.2%, 호남통 23.4%, 제주 이호통 44.0%이다.

  이와 같은 결과는 철원과 제주 토양이 화산 폭발로 생성된 현무암을 모암으로 하고 있는 토양 특성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쌀 생산량이나 미질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예로부터 「모랫논 보다는 진흙땅 논 쌀의 밥맛이 좋다」 라는 말이 전해오고 있는데 농사짓는 사람이면 점토 함량이 높은 논에서 생산된 쌀의 밥맛이 좋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4. 남저북고 지형과 수자원 문제

  철원 지역의 지형은 남저북고(南低北高)형이다. 따라서 북한 지역에 내리는 눈과 빗물을 남쪽 철원 지역에서 먼저 이용하게 되어 비교적 수자원이 풍부한 편이고 수질도 깨끗하다. 그러한 지형 때문에 한탄강, 화강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비무장지대 철책선에 인접해서 건설된 토교저수지, 동송저수지, 산명호저수지가 있고, 그 외도 잠곡저수지, 학저수지, 금연저수지, 용화저수지가 있다. 또한 샘통이라는 사계절 내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분출하는 샘이 있어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물고추냉이 재배가 활성화되어 있다.

  남저북고 지형으로 자연이 만들어 낸 최고의 걸작은 한탄강이라고 본다. 한탄강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협곡으로 이루어진 강으로 직탕, 송대소 주상절리, 마당바위, 고석정, 순담계곡 등 여러 절경을 보여 준다. 또한 철원평야와 어우러져 직벽 협곡의 장관이 더욱 돋보이고 최근 한탄강 직벽에 설치된 잔도는 많은 관광객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5. 재해(災害) 관련 여건

  철원은 우리나라 북쪽 내륙에 위치해 있다. 보통 여름철 태풍은 남쪽 바다에서 육지로 상륙 올라온다. 그러다 보니 육지에 있는 산과 같은 여러 장애물에 의해 약화되어 철원 지방에는 태풍에 의한 피해가 적은 편이다. 장마철에 침수에 의한 피해도 적은 편인데, 한탄강이 거대한 배수구 역할을 하여 배수가 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원평야에 재배되는 벼가 비바람에 의한 대대적인 쓰러짐이나 침수가 없다. 그러므로 벼 생산에 유리하고 벼 이삭에서 싹이 트는 경우가 현저히 적어 고품질 쌀 생산에 크게 도움이 된다.

  철원은 우리나라에서 겨울철이 추운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추운 날씨 때문에 작물 재배에 피해를 주는 이화명충, 애멸구, 벼줄기굴파리, 끝동매미충과 같은 해충이 유충으로 월동하기가 어렵다. 또한 벼농사에 피해를 주는 도열병의 균사나 잎집무늬마름병의 균핵 등이 월동하는데 불리하게 작용하여, 따듯한 지역에 비해 병해충 발생이 상대적으로 적다.

  작물 재배에 피해를 주는 여러 해충들 중에 벼멸구, 흰등멸구, 혹명나방, 멸강나방 등은 비래해충(飛來害蟲)으로 주로 장마철 기류(氣流)에 의해 중국 남쪽 지방으로부터 날라오는데, 우리나라 북쪽에 위치한 철원에는 남쪽 지방에 비해 그러한 해충들이 날라오는 정도가 현저히 적다. 따라서 그러한 비래해충으로부터의 피해가 적어 작물 재배에 유리하다.

 

6. 청정한 자연환경

  자연환경의 청정성과 관련한 주요 요소는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그리고 오염되지 않은 토양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경제 활동으로 많은 유해가스가 발생한다. 공장, 화력발전소, 자동차 운행과 같이 화석 연료 사용이 많아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등이 문제가 된다. 이산화탄소는 인간에게 해롭기도 하고 온실가스로 작용하기 때문에 기후 온난화와 관련 문제가 된다. 그러나 철원에는 공장이 거의 없고 운행되는 자동차 대수도 많지 않아 철원의 공기는 깨끗하다. 라돈(radon) 가스도 사람에게 폐암을 일으키는 무서운 유해가스인데 현무암 지대에서는 대체적으로 안전하다고 한다. 가을철에 벼 건조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와 축사에서 나오는 악취 문제가 다소 있으나 크게 문제되는 것 같지는 않다.

  철원의 물은 기본적으로 북쪽으로부터 비무장지대를 통해서 내려온다. 철원 지역의 지형이 남저북고(南低北高)형이기 때문이다. 한탄강과 화강 그리고 철책선 인접해서 만들어진 토교저수지 등이 주요 물 공급처인데 이러한 깨끗한 물을 식수와 농업용수로 사용한다. 비무장지대를 거쳐 오는 물을 먼저 사용함으로 수질과 수량 확보면에서 좋다는 말이다. 철원은 현무암 지대다. 현무암은 다공질 돌로 물을 정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물을 오염시킬만한 공장이 없다. 따라서 철원의 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깨끗하다고 해도 될 것이다.

  철원의 토양은 거의 오염되지 않았다. 물이 오염되면 따라서 토양도 오염되기 마련인데, 물이 오염되지 않았으니 토양이 오염되기가 어렵다. 또한 토양을 오염시킬만한 산업체가 없다. 따라서 철원에서 생산된 쌀을 비롯해 여러 농산물이 최대의 청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철원의 공기와 물이 특별히 깨끗해서 사람이 살기에 아주 좋다. 넓은 평야와 자연이 빚어낸 걸작 한탄강은 편안함과 즐거움을 준다. 특별한 논토양으로 이루어진 평야와 여름철 긴 일장(日長), 그리고 가을철 큰 일교차는 좋은 쌀과 농산물을 생산한다. 철원은 사람이 살기에 특별히 좋은 곳이다.